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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코페르니쿠스의 업적과 지동설에 대하여

by 섬달구지 2020. 12. 23.


오늘의 이야기는 천문학자이자  지구의 중심설 즉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에서 출생을 하였으며 천문학 사상 아주 중요한것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폴란드에서도 국가의 영웅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고
지동성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재발견'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아보면 오래전 1700년 전 고대 그리
스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주장하였기 때문이였는데 그는 비록 결과적인 연구결
과에는 오차가 있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와달 태양 서로간의 거리를 계산한 인물이었
다. 이후로 천동설은 완전히 묻히게 되고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 때에 이르러서야 재발견된
다. 지동설은 연구한 계기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이탈리아 유학 중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저작을 알게되고 계기가 되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천문학자 이미지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당시에는  제대로 된 천체망원경도 없던 시절이고 티코 브라헤의 방대하고도 체계적인 관측자료들이 알려지기  예전이었다.
지동설을 주장하게 된 근거는 관측결과 보다는 일종의 철학적인 직관이었다. 천동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색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아름다운' 철학적이야기를 말하는 이론적에 불구하였고 이후에는 관측결과에 끼워맞춰가다보니 여러가지로 복잡해지고 전혀 아름답지도 않았다는 것. 천동설의 문서를 알아보면 알겠지만 행성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천동설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주전원 등 Ad Hoc등 복잡한것은 엄청나게 많이 갖다붙여야 했다. 반면 지동설을 도입하면 이런 복잡성들이 상당히 간단히 설명되었던 것이다.
지동설은 기본적으로 철학적근거의  결과로 보여졌기 때문에 우주천체의 궤도가 완벽히 둥글다는 원으로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느 달리 원운동만으로 행성궤도에 관한 설명을 한다는것은 불가능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과 이심을 이용하여 행성궤도를 설명하게 되었으며 이로인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도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나 추후에는 결과적으로 요하네스케플러의 연구결과에 의해 원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야 혼란스러움을 잠재울수있었다.지동설에 충격 효과 때문인지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리키는 '코페르니쿠스적'이라는 관용어가 들어가게 되었고 상대성 이론에 관하여 처음 제시했을 때 대부분 학자들은 싫어했지만 상대적인 천문학자들에게 높이 평가되어졌다.


여기까지 편집
지동설 재발견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때문에 알지도 못하고 묻힌 이야기가 있는데, 화폐론과 금융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성과를 거듭했다는 인물이다.화폐론에 대한 연구성과에 대하여 알아보자면 귀금속을 화폐의 가치는
 귀금속 자체의 가보치가 아닌, 다른 물품과 상대적 교환하는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라는 말이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통화량이 두배로 증가하게되면 금화의 가치는 뚝 떨어져서 절반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정확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셈이다. 
시간이 많이 경과되고 수십년이 지난 후 아메리카대륙에서 엄청나게 많은 금이 유통되면서 유럽전체에 물가가 폭등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연구결과가 옳았다는것이 증명되었다. 이로인하여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이라고까지 주목받은 것에 비하면 화폐론의 연구는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았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때당시의 상인들부터가 화폐의 가치가 상대적 가치를 몸소 느끼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기존의 이론 결과에서귀금속이 가진 고유한 내재적 가치에 의해 화폐의 가치가 결정된다 신비주의와 연금술 사상이 결합되어진 형태였기 때문에 때로는 비웃음거리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했다기보다는 이미 사람들이 알고 느끼고 있는 생각 개념을 정립하는 정도의 연구였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가 계산했던 항성 간 거리 측정는 세월이 지나서 조금 틀리다는 것이 드러났고 사실 이 계산법은 약간 오차가 있긴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1526년 계산으로 365.2570370 ...으로 D = 365 D 6 H 10 m 8 으로 30초 오차만내는 결과를 내고 계산했다. 기계나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던 그시절에  30초 오차는 대단한 것이다. 세월이 지나 그보다 더 오차를 줄여 계산한 사람이 코페르니쿠스보다 90년전에 나왔다는 게 밝혀졌지만 바로 그 인물은 티무르 제국 황제이던 울루그벡. 1437년도에 불과 오차를 25초로 줄인 계산으로 거리를 측정했다는 게 드러났다.이러한 것을 보았을때 코페르니쿠스는 엄청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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